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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22년2월28일(목) 창22:1-24 큐티목소리나눔> “네 사랑하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쳐라”

<2022년2월28일(목) 창22:1-24 큐티목소리나눔>
“네 사랑하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쳐라”

1. 아들을 번제로 바칠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 음... 아니? 그렇게 힘들게, 여러 해를 걸쳐 약속학시고 훈련시켜서 태어나게 하신 아들인데... 왜 갑자기?
* 아마도 “네 사랑하는, 하나밖에 없는, 네 아들”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 속에 하나님의 의도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하실 때 “본토, 친적, 아비 집”을 “떠나라” 하신 것처럼, 아들 이삭에 대한 하나님의 묘사에서 뭔가 떠나보내야 하는 것,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버려야 하는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 어쩌면 아들에 대한 아브라함의 깊은 애정은 그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중심적인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
* 그러게요. 아브라함의 지난 30여 년의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과 가장 많이 다퉜고, 또 혼자 계획 세우고 실천하기도 했던 영역이 바로 ‘아들’과 관련된 것이잖아요? 그니까 하나님은 이젠 이걸 좀 다뤄봐야겠다. 그러시는 게 아닐까요?
*** 그러고 보면, 하나님은 우리 인생 속에서도 동일한 질문을 하시고 답을 요청하시는 것 같네요. “너의 인생을 이끌고 움직이게 하는 내면의 가장 중요한 동기는 무엇이냐? 그것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나 여호와 하나님이 있도록 자리를 내어줘!” 라고 말입니다.
* 어떤 이는 그것이 뭔가 다른 사라의 인정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일 수도 있고, 또 뭔가 파워를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어떤이는 인생의 위험과 불안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일 수도 있을 거고... 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가장 중요한 인생의 동기와 목적, 의도의 중심에 하나님 당신의 있기를 원하셔서 우리에게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불태워 버릴 것을 도전하시는 거란 생각이 드네요.

2.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결단을 실행하는 아브라함
* 하나님 맘이야 그렇다 치고,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은 아브라함은 대체 어떤 맘이 들었을까요?
* 음... 일단. 고대 근동(메소포타미아와 팔레스틴을 아우르는 명칭) 풍산제의(풍년을 바라고 드리는 제사)에서 동물, 곡식을 제물로 드리는 것과 더불어 어린아이를 제물로 드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이 명령이 낯설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 근데... 문제는 그 제물이 바로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아들’인 것이지요.
*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시한 곳으로 가기 위해 3일 동안 길을 가면서 마음속에 스치고 지나갔을 수많은 질문들 씨름하고,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감정의 격동과 갈등을 만나야 했을 거라....
* 그러론, 마침내 ‘논리적’으로는, 이성적으로는 결론을 내린 것 같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약속의 후사라면, 그를 바치고 나서 하나님은 어떤 방법이든 도로 돌려주실 것이 틀림없어.”(히11:17-19)
* 허나... 사람이 머리로 결정했다고 마음도 동시에 따라가는 것은 아니지요. 이삭이 제물은 어디 있냐고 물을 때, 아비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지...
* 그러나, 아브라함은 의지를 발휘해서 아들을 잡아 묶어서 제물로 드리기 위해 칼을 높이 듭니다.

*** 우리는 동일한 이야기를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현장에서, 십자가 현장에서 만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우리는 이 두 기도 가운데 수많은 마음의 고뇌와 결단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느낄 수 있습니다.
* 그리고... 마침내 나 자신의 인생 가운데도 어느 날 불쑥 찾아오신 하나님이 그러시는 거죠. “네가 사랑하는, 하나밖에 없다고 애지중지하는, 그게 없어지면 목숨을 잃을 것같이 불안하고 두려운, 네 인생 전체를 이끌어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라.”
* “그것을 내 앞에서 번제로 태워버려라. 그리고 그 자리에 내가 있도록 나를 초청하라.”
* 그러게요... 우리 역시 아브라함의 삼일 길처럼, 예수님의 겟세마네처럼 고민과 갈등의 긴 시간을 걸어가야 하는 거라는...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을 정말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이끔이로, 주인으로 새롭게 만나고, 이를 통해 사랑과 평화의 새로운 세계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거라는~~

3. 아브라함을 급히 부르시며 아들 대신 숫양을 제물로 주시는 하나님
*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독자 이삭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아끼지 않는 마음과 행동을 보시고 매우 기뻐하시고 가슴 뿌듯해하시네요... 음.. 고뢰? 야~ 이제야 네가 나를 쫌 경외하는구나야. 이제 됐어!!
* 하나님께서는 숫양을 보내주셔서 이삭 대신 제물로 삼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마치 황당한 일을 만난 뒤 몰래카메라가 설치된 것을 발견한 사람들처럼  한순간에 모든 상황을 꿰뚫어 알아차리게 되면서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찾아오는 묘한 감정, 바로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맞보지 않았을까요?
* 아브라함은 이 모든 마음을 모아 제사를 드리며, 이곳 이름을 “여호와 이레”(주께서 준비하여주심)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겠다. & 여호와 이레”

*** 우리도 믿음의 여정 가운데서 반드시, 꼭 한 번은 맞닥뜨리게 되는 게 바로 이 사건이라...
* 내 인생 가운데 이유를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나 자신을 희생하고 드려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때, 바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시는 때이구나... 라고 생각하고서 아브라함과 같이 순종의 길을 가는 게, 그게 신앙의 정석이란 말씀~!
*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테스트 하실 때란 걸 얼렁 깨듣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하나님이 우릴 시험하실 때에는 반드시 그 목적과 의도가 있다는 것, 또 반드시 피할 길도 예배해주신다는 것도 믿고서 기꺼이 나 자신을 내어드리는 결단을 할 때 복이 팍팍팍~~!! ㅎㅎ
* & 그 결과는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참된 평화와 주님 나라의 복을 누리는 삶으로 업그레이드 되어있는 나를 만나는 것이구요.^^ 또, 하나님께서는 이런 나를 바라보시며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서 어쩔 줄 모르시는 것도 같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이름을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3:17)

4.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심
*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런 순종을 내가 보았으니, 네게 복을 준다.”라고 자손의 번성과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을 약속해주십니다.
* 아.. 근데요.. 이 말씀은 실은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 주신 말씀하고 똑같은데요? 뭐 좀 업글되고 그래야 재미도 있고 그럴 텐데... ㅎ
* 음.. 가만 생각해보면, 처음 주신 약속이 진짜로 어마무시한 거라, 그걸 받아 누리게 하기 위한 그릇을 준비하는 과정이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고, 또 이렇게 쎈 강도가 필요한 거였다는 생각이... 에고... 그니까, 하나님만응ㄹ 순전하게 신뢰하고 믿고 따르기가 얼마나 어럽고 힘든 길인지... 세상 유혹, 시험이 몰려 올 때에.. 어찌 할 줄 몰라 헤매고 있기가 얼마나 쉬운지...
* 아마, 아브라함의 지금 상황, 곧 오늘처럼 아들을 잃어버릴 뻔하다 다시 받은 상황에서 다시 듣는 이 이야기는 (그 전에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정말 새롭게 들리지 않겠습니까? 바로 내가 (마음속으로는 이미)드렸던 이 아들을 통해 이런 어 무시한 일을 이루시겠다는 얘기니까요~~~
* 그니까, 사실, 우리 인생의 여러 질곡과 시험대를 통과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때그때 주시는 약속의 말씀과 축복의 내용은 이미 성경을 통하여 다 말씀해 주신 것들이잖아요? 다름 아닌 “영생, 곧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그 나라의 풍성한 복”인데..
* 근데, 적당히 세상의 유혹 시험이 뒤섞인 삶 속에서 바라보고 느끼는 하나님 나라와, 아브라함처럼 몽땅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다시 느끼는 하나님 나라는 그 느낌과 크기, 깊이가 좀 다를 것이라..  
* 그렇게 더 깊고 풍성하고 넓고 오묘한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누리기 위해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 그랬던 것임을 따~악 새겨봅니다.^^ 오늘도 아자!!

Ps. 오늘은 새벽부터 뭔 회의가 잡혀있어서 녹음은 생략합니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