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01월06일(금) 출2:1-10 큐티목소리나눔>
“모세의 탄생, 하나님의 일하심, 파트너 파라오 공주, 모세 엄마”
1. 모세의 탄생과 하나님의 일하심
* 모세의 부모는 레위 지파로 소개됩니다. 그가 첫째아들인지는 불분명합니다. 뒤에 형 아론이 소개되는 것과 본문에서 누이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모세 위로 몇 명의 형제가 더 있다고 볼 수도 있겠죠.
* 다행히 아론의 경우에는 영아살해 명령 이전에 태어나서 목숨을 부지했을 거라는...
* 모세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히브리인들 사이에서는 파라오의 명령에 따라 사내아이는 다 강에 던져야 했는데...
* 모세의 엄마는 아이가 너무 잘 생겨서(^^ 뭐 잘 생기기도 했겠지만, 자식에 대한 애끓는 정으로 인해 차마 못 죽인 거라고 봐야겠죠..ㅠㅠ) 석 달을 숨겨두고 키웁니다.
* 허나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모세의 엄마는 아이를 역청을 바른 갈대 상자에 넣고 강가의 갈대숲에 숨겨둡니다.
*** 음..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고난을 겪고 있는 중에도,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착실히 이행해나가셨는데요,
* 먼저는 “네 자손이 하늘의 별들만큼 많아질 것이다.”(창15:5)의 말씀을 이루어주셨죠,
* 이제는 약속의 땅으로 이들을 구출해갈 사람을 보내주셨습니다.
* 제아무리 나쁜 놈들이 잘사는 것처럼 보여도, 역사의 주인공은 자기들이라 우겨대도, 우리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을 향한 당신의 역사를 펼쳐나가시는 걸 막을 수 없다는 자신감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역사의 방향에 대해 낙관적인 이유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주관자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의 손길을 베풀면서 사람의 도움과 함께함을 요청하시는데요..
2. 파라오의 공주가 모세를 구출하여 양자로 삼게 되었으니.. 그녀는 하나님 나라의 도우미, 파트너라는ㅎㅎ^^
* 이 과정에 파라오의 이름 모를 공주 한 명이 도우미로 등장합니다. 그녀는 아버지(혹은 삼촌, 아제... 뭐 암튼) 파라오의 명령이 얼마나 잔인한지 살아있는 아이를 보고서 깨닫습니다. 눈앞에 살아서 울고 있는 갓난아기를 보고 다시 살해를 명령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아이를 보고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연민의 정. 하나님이 모든 인간에게 주신 자연스런 사랑의 감정으로 인해 용기를 내어 불합리한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아이를 양자로 삼을 수 있었던 거죠.
* 파라오의 공주가 적통인지, 후궁의 딸인지.. 뭐 이런 세세한 정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ㅎㅎ 암튼 그녀는 왕의 딸로서 아이가 히브리인임에도 불구하고 보호해줄 수 있는 충분한 권세를 가진 사람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 그녀는 아이를 불쌍히 여겼고, 생명을 구해주었고, 마침 멀찍이 지켜보고 있던 모세의 누이가 지혜롭게 유모를 구해주겠노라고 나섰고, 모세의 엄마가 삯까지 받으며 아들에게 계속 젖을 먹일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모세는 왕궁에 입양되어 갔으니~~
* 그녀가 지어준 ‘모세’라는 이름은 이집트에서는 꽤나 흔한 이름이었죠. ‘낳다’라는 의미가 담긴 말로서, 투트모세, 프타모세, 아모세, 하모세 등등 파라오의 이름에도 많이 쓰였답니다.
***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명시적으로 하나님을 알든, 알지 못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이 주신 일반은총, 곧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 양심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이루어져 간다는 사실!!
* 가나안 정복 때 정탐꾼을 숨겨주었던 라합이라든지(수2:1~), 엘리야를 숨겨주었던 시돈의 과부라든지(왕상17:8~)... 수많은 사람이 당시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협력했던 이야기가 성경 곳곳에 펼쳐져 있습니다.
* 또 성경뿐 아니라 역사를 돌아봐도 노예해방, 인종차별 철폐, 환경운동, 인권운동, 반독재민주화운동 등등... 인간의 자연스런 양심을 따라 행동하는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평화, 공평과 사랑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파트너로서 일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
* 거기에 비하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리던 발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부름에 응하는 것처럼(민22장), 명시적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면서도 악을 위해 봉사하고,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도 못 하고 천방지축 날뛰는 사람들도 있으니...ㅠㅠ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적폐 세력이라고 할 수 있겠고, 하나님은 이들을 반드시 진멸하실 거는 분명한 사실!!
*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그의 백성 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를 주께서 끝까지 이루실 것을 믿고(빌1:10),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질 그날을 바라보며 이곳에서의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파라오의 공주처럼 정의와 사랑, 평화와 공평을 이 땅에 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이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든 아니든, 다른 종교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분들을 파트너로 삼으셔서 지금 이 땅을 다스리고 계심을 알아차릴 수 있기를, 나아가 이분들과 함께 더불어 사랑과 평화, 정의와 공평을 향해 동역할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 있기를 기도해봅니다.
(기독교인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을 ‘단지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너무 가려서 사귀거나, 심지어 너무 배척하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는~~^^)
3. 한편, 모세의 엄마(요게벳이라고..), 그녀가 아이를 갈대 상자에 넣고 띄워 보낼 때, 그 마음에 머물러 봅니다.
* 누군가 그때 그 심정을 담아 노래했네요.
작은 갈대 상자, 물이 새지 않도록 나무진을 칠하네
어떤 맘이었을까 그녀의 두 눈엔 눈물이 흐르고 흘러
동그란 눈으로 멈말 보고 있는 아이와 입을 맞추고
상자를 덮고 강가에 띄우며 간절히 기도했겠지
정처없이 강물에 흔들흔들, 흘러 내려가는 그 상자를 보며
눈을 감아도 보이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겠지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를 이끄시는 주,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드린다.
동그란 눈으로 엄마를 보고 있는 아이와 입을 맞추고
상자를 덮고 강가에 띄우며 간절히 기도했겠지
정처 없이 강물에 흔들흔들, 흘러 내려가는 그 상자를 보며
눈을 감아도 보이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겠지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를 이끄시는 주,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드린다.
그가 널 구원하시리, 그가 널 이끄시리라.
그가 널 사용하시리. 그가 너를 인도하시리.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너의 삶의 참 주인, 너를 이끄시는 주,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드린다.
*** 그니까요... 인생 살다보면, 이렇게 내가 어떻게 더 이상 뭘 더 해볼 수 없는 상황을 만나게 되기도 하잖아요? 이럴 때, “너의 삶의 참 주인, 너를 이끄시는 주,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드린다.” 이 고백이 참 마음에 깊이 와 닿네요... 진짜 이렇게 주께 온전히 내어 맡기고서, 내 손에서 그를, 혹은 그 상황을 내려놓아야만 할 때, 그때... 진짜로 주님을 붙잡고 기도하고, 의탁하는 수밖에요...
* 그리고,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선한 뜻을 이뤄가실 거니까요...
https://www.podbbang.com/channels/8784/episodes/24596263?ucode=L-naYtcr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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