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23년04월06일(목) 고후12:1-10 큐티목소리나눔> “PR 시대에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함’을 자랑하며 살기”

<2023년04월06일(목) 고후12:1-10 큐티목소리나눔>
“PR 시대에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함’을 자랑하며 살기”

*** 바쁜 일로 인해 월~수에 나눔을 쉬었네요. 그간 바울이 한 이야기를 좀 요약해보겠습니다. 고후11장 내용이 되겠네요.

*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사역할 때 일절 pay를 받지 않았습니다.
* 고전9장에서는 이점에 대해 상당히 길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이고 성경(구약 전통)에 비춰 봐도 받는 게 맞다. 하지만 난 이 권리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내 삯으로 여기고자 한다.” 뭐 이런 논지였습니다.
* 편지의 행간을 읽고 상상해보면, 고린도 같은 큰 도시에서는 그리스 출신의 자유민들 중에 pay를 지급하면서 가정교사로 고용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들 중 한 사람 취급받는 걸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그들이 pay를 지급하고 가르침을 받으면 복음에 대해 빚진 자로서의 마인드가 생기지 않을까 봐, 혹은 바울의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자신들이 고용한 교사 정도로만 여길까 봐, 그래서 바울의 가르침을 자기 맘대로 왜곡시키고 그럴까 봐 그랬을 수도 있겠죠.
* 한편, 바울은 고린도에서 사역하면서 먼저 개척된 마케도니아지역에서 보내오는 후원금은 받았다는 사실!! 그런 바울의 태도에 대해 고린도 교회에서는 도리어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감정적으로도 매우 서운했구요. “왜 우리 돈을 받지 않느냐? 우리 돈에 똥이 묻었냐? 우리를 덜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니냐? 왜 우리는 찬밥 취급하느냐?”
* 게다가 이번엔 돈을 달라고 하는데, 그게 또 자기 pay가 아니라 예루살렘교회를 돕는 데 쓰겠다네요. 그 참... 문화적 차이에다 개인적 성향까지 더해지면서 오해가 쌓인 결과인 거죠...
* 근데 이런 감정적인 서운함을 이용해서 이번 기회에 바울 대신 자기가 교회의 리더십을 확실히 잡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교회로부터 사도들로부터 추천권을 받아서 온 사람들인 것 같은데요. 그래서 스스로 자칭 사도라 하기도 했을 것 같고...
* 가르침의 내용도 바울보다는 더 율법준수에 열심을 내는 경향이 있었을 것 같고, 그걸 또 논리 정연하게 웅변적으로 가르쳤단 말씀(바울은 고린도의 엄청난 선진적 문화와 있어빌리티를 갖춘 사람들 앞에서 약간 주눅 든 모습이었는데.. 고전2:3). 무엇보다도 당당하게 pay를 요구했던 거죠. 이게 또 고린도 문화에 아주 잘 맞았고.
* 고린도 성도들은 이들이 가르침에 솔깃했고, 바울을 내치기까지 해버렸다는...

* 바울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고린도 전서를 써보내고, 또 직접 가기도 했고, 또 매우 엄하고 혹독한 내용의 편지도 보내고... 진짜 엎치락 뒤치락 하며 악전고투를 해오고 있는 중입니다요...ㅠㅠ
* 마침내 바울을 이제 디도로부터 고린도교회의 우호적 태도에 대해 듣고 나서, 기회를 붙잡아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아마 바울의 서신서 중에 이 고후11장 본문처럼 바울의 당시 느낌이 잘 느껴지는 건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느낌, 숨소리를 느끼면서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 우선 약간 비꼬는 듯한 목소리로 “나는 저 거물급 사도들보다 조금도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는 느낌부터, “내가 왜 이렇게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까?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알고 계십니다.” 뭐 이러는 대목까지 바울의 표정, 감정, 그 마음이 너무 잘 느껴지네요...
* 바울은 나아가 이른바 ‘거물급 사도’들에 대해 폭로전에 돌입합니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요,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한 사탄의 일꾼입니다.”
* 최후의 카드까지 내놓은 겁니다. 그리고 이게 사실이구요. 사탄은 고소 고발을 통해서 진리를 막고 왜곡시키는 짓을 너무 잘하니까요.
* 이제 바울도 그 대열에 잠깐 끼어들기로 합니다.
* “너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다. 너희가 아브라함 자손이냐? 나도 그러하다.”
* 근데, 이야기가 “너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에 이르러서는 “나는 더더욱 그러하다”로 나아가면서, 진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그가 겪었던 수많은 사건이 좌~악 나열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진짜 사도의 엄청난 내공을 느끼고 압도당하고, 비장미 가득한 진실을 만나게 되는 거죠.
* 바울은 분명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은 평소 복음을 소개하는 방식이 아닌, 저 나쁜 놈들이 사용하는 방식을 잠깐 빌려서 하는 말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조차도 바울의 진정성과 복음의 위대함과 능력을 발견하고 놀라게 되는, 이 역설적 아름다움, 진실!!!
*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자신을 소개하는데... 이건 당시 자랑거리로 명함에 기록할 내용과는 정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겁니다. 매 맞고, 굶주리고, 파선하고, 전쟁에서 성벽을 타고 넘어가서 성을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거꾸로 바구니에 달려서 성을 탈출하고.... 누가 봐도 이건 명함에 쓸 내용이 아니라 감추기에 급급한 내용 같은데요...ㅠㅠ
* 핵심은 V30입니다. “꼭 자랑을 해야 한다면 나는 내 약점들을 자랑하겠습니다.”
* 왜요? 예수님이 그러하셨으니까요. 예수님은 창조주요, 당신의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오셨건만, 가장 연약한 인간 아기로 태어나셨고, 인간의 모든 고통을 직접 몸으로 겪으셨고,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선택하신 방법이 채찍 맞고,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시는 거였으니...
*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거두소서...”라는 고뇌와 “하지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결단에 이르기까지를 잘 알기에, 바울도 “모든 것 다 제쳐두더라도 여러분들을 향한 염려로 인해 내 마음이 이토록 무겁고 힘들고 애탄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 바울은 이것을 자랑합니다. 나의 연약함을... 바울의 자랑, 그 속에 담긴 역설, 그 비장함, 복음에 대한 열정, 헌신...  그저 그 묵직함과 감동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는 말씀입니다.

***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고린도 문화와 너무나 닮아있는데요...
* 세상살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교회 안에서는요? 교회 안에서는 바울처럼 나의 연약함을 자랑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 자랑 자체를 할 게 뭐가 있을까요? 그저 “나는 무익한 종이라. 할 일을 하였을 따름입니다.”라는 고백만 있으면 되는 거죠.
*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럽니다. “굳이 나 자신을 자랑해야 한다면, 나는 내가 당한 굴욕을 자랑하겠습니다.”(The Message)

* 하지만, 바울은 아직 자기 맘이 다 풀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친 김에 내 자랑을 좀 더 해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풀어가는데, 이게 오늘 묵상할 본문입니다. 그러면서 결론은 또 역시 굳이 내가 자랑한다면 난 나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이야기하죠. 바울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이, 참, 쏙 빨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네요..ㅎㅎ

1. 셋째 하늘까지 올라간 경험
* 바울은 내친김에 자신의 신비한 경험을 말합니다. 어쩌면 고린도에 있는 가짜 교사들이 자신들이 이런저런 능력을 받았느니, 무슨무슨 경험을 했느니 하도 많이 떠들고 있어서 일부러 그들이 살짝 기가 죽을 만큼만 흘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
* 이스라엘사람들은 하늘이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그러니 세 번째 하늘은 가장 깊고 가장 높은, 제일 심오한 곳이겠죠. 아마 어쩌면 손오공이 천도복숭아를 딴 곳도 그곳일지도 모르죠. ㅋㅋ
* 바울은 이곳으로 이끌려 올라갔는데, 자기가 몸을 입을 채 갔는지, 아님, 몸은 이곳에 두고 갔는지 모르겠노라고, 암튼 정말 신비한 경험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얘기들을 많이 들었노라고 소개합니다.

2. 반전, 육체의 가시
* 바울은 이런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누구나 이런 경험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감요?”라고 허세를 부리지 않습니다.
* 대신, 이런 경험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나를 과대평가할지 모른다고 말하면서 정반대의 이야기를 이어서 해줍니다.
* 바로 ‘육체의 가시’입니다. 바울은 이게 넘 힘들어서 세 번이나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아마 사람들은 여기까지 듣고서 ‘아! 하나님이 당근 들어주셨겠쥐’라고 생각할 텐데, 바울은 바로 반전, 하나님의 응답은 “고마 해라. 마이 묻다 아이가?”라는 말이었다고.
* 바울의 이 ‘육체의 가시’가 뭔지는 사람들마다 억측이 난무합니다. 평생 달고 다녀야하는 질병? 아님 장애? 뭐 이런 거일 것 같습니다.
* 암튼, 이게 너무 과해서 교만해지지 않도록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안전장치라고 소개를 하네요. 그래서 바울은 순전하게 받아들이고 고통 속에서도 견디며 불평하지 않고 그저 감사함으로 살아가노라고 고백합니다.
* 뿐만 아니라, 자신이 겪었던 수많은 병약함, 모욕, 궁핍, 박해까지 다 기뻐하는 까닭은 바로 ‘내가 약할 때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 아마, 고린도 성도들이 이 글을 읽고서 가짜 교사들에게 부화뇌동해서 바울을 얕잡아봤던 자기들이 많이 부끄러웠을 것 같네요...

***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라고 외치는 시대 속에서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하다.”라고 조용하게 그러면서도 힘 있게 말하며 살아가는 바울을 닮고파~~
* 그렇죠. 내가 잘난 맛에 지나치게 빠져 사는 게 바로 자기 중심싱이요. 그게 성경이 말하는 죄라. 내가 약함을 솔직하게 open하는 그 때 주님이 내 속에서 일하시고 나를 이끌어 가실 자리가 있는 거고, 그게 바로 주님 안에서 성숙해가는 길이라는 사실.
* 내가 약함을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고 나에 대한 자신감과 여유, 또한 주님이 주신 각종 탈랜트를 사용하고 드러내면서도 그게 나의 자랑이 아니라 그저 주셔서 사용할 뿐이라는 겸손함이 어우러지는 예수님 닮은 인격으로 자라길 소망합니다.
* 한편, 바울의 고백을 들으며 수많은 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이 떠오릅니다. 육체적 정신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약함의 연대와 유대 속에서, 각 사람의 내면을 단단하고 건강하게 세워주시길 기도합니다. 또 나도 그 속에 함께 있어서 같이 이웃이 되어 살아가길~~

Ps. 11장까지 요약하다 보니 넘 길어져서, 또 시간이 넘 늦어져서 녹음은 생략합니다. 널리 양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