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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23년04월11일(화) 고후13:5-13 큐티목소리나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걸 삶의 현장에서 알아차리기 & 축복의 인사”

<2023년04월11일(화) 고후13:5-13 큐티목소리나눔>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걸 삶의 현장에서 알아차리기 & 축복의 인사”

**** 바울은 진짜진짜 마지막으로 당부를 합니다, 계속 바울의 말을 풀어서 다시 써봅니다.

1. 여러분을 스스로 시험하여 보십시오.
* 여러분이 나에게 어디서 무슨 추천장을 받아왔느냐고 물었습니까? 실은 그 질문은 내게 물을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자신에게 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증거가 있나? 내게 믿음이 있나? 내 안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계신다는 걸 나는 알고 있나? 내 삶에서 그 증거가 있나?”
* 만약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해서 “No."라면, 여러분은 실격입니다.
* 나는 여러분이 이 질문에 모두 다 통과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여러분이 실패하느니 차라리 내가 실패자가 되는 편이 더 낳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여러분이 주 안에서 완전해지기를 깊기 소망한다는 말입니다.

**** 바울의 이 질문이 갑자기 우리를 멈춰 서게 하네요.
* 사실 형제자매들에게 무슨 무슨 티끌들을 너무나도 잘 보는 우리들이잖아요? 근데 바울은 그런 우리보고 먼저 해야 할 게 있는데, 형제를 비판하는 그 질문을 자신에게 해보라. 그리고 그 질문에 자기 자신은 통과가 되었는지 답해보라고 권하는 거죠. 끙....
* 더 나아가 바울이 던진 질문은 우리 자신들이 영적 성숙을 위해 가장 기초적으로 다져 야하는 질문이네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심이 삶 속에 잘 드러나고 있나?”
* 솔직하게 답하면, “Yes & No” 네요... 어떤 땐 잘 드러나는데, 또 어떤 땐 희미해지고....ㅠㅠ 부디 하루하루 자라서 “Yes & Yes!"로 점차 삶의 색깔이 바뀌어 가야 할 텐데 말입니다.
* 그러려면, 내가 어떤 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색깔이 희미해질까? 이걸 잘 알아차리는 게 점차 삶의 색깔이 Yes 쪽으로 움직이는데 중요한 순간이 되겠죠?
* 실은 많은 경우 묵상과 기도와 예배 중에는, 또 내 생각 속에서는 분명 Yes인데, 삶의 굴곡이 묻어나는 순간들, 여러 가지 감정과 욕망이 교차하는 구체적 순간이 되면 그만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잊어버리는 경우들이 많죠. 부디 그렇게 여러 가지가 뒤엉켜있는 가장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도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알아차릴 수 있기를...  
* 그헐게 살려면, 상황에 계속 끌려다닐 게 아니라, 예수기도! 심호흡 크게 한 번 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당신의 마음에 온전히 머물게 하소서”라고 예수기도를 드리면서 깨어나는 것 그게 진짜 중요한 거죠.

2. 바울이 사도가 된 이유는
* 내가 사도로서 여러분을 권하고 때로는 야단도 치고, 부드럽게 때로는 엄하게도 가르치는 이유는 바로 여러분을 그리스도 안에서 바로 세우는 게 내 임무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나도 여러분을 엄하게 다루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라고 편지를 쓰는 겁니다.
* 내가 약하더라도 여러분이 강하게 되기만 한다면, 우리는 기뻐합니다.
* 빌립보서의 고백에 따르면 “나는 여러분을 위해 나를 관제(제물 위에 붓는 기름)로 드릴지라도 기뻐하고 기뻐합니다.”
*** 그저 Amen!입니다. 바울을 닮아, 바울을 따라 형제자매들을 섬기고 이끄는 리더로 되길 깊이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강하게 되기만 한다면 난 어떠해도 그저 기뻐합니다.” 아멘!!

3.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성려의 사귐”, 가장 유명한 끝인사
* 고린도후서를 마치며 바울은 교회 안에서 가장 유명한 끝인사를 합니다.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빕니다.”
* 바로 우리가 예배를 마칠 때 주로 축복하며 기도하는 문구로 사용되는 인사입니다.
* <주의> 간혹 어떤 이들은 이 축도를 목사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른바 “축도권”이라는 이상한 용어도 만들어 사용합니다. 그래서 어떤 전도사나 강도사가 예배를 마치면서 이 기도를 했다고 해서 치리해야 하느니 마느니 시비가 붙었고, 변명 삼아 한 말이 “그래도 손을 들지 않았다.” 뭐 그랬다고 하는 이야기들도 있죠...  바울의 이 끝인사는 누구의 전유물이거나 예배를 마치는 주문이 아니라, 성도를 향해 누구나 나눌 수 있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요, 축복을 기원하는 인사입니다.
* “주 예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사귐”  바울이 건넨 이 인사 속에는 정말 기독교의 모든 게 다 녹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 삼위 나님이 함께 하신 구체적인 사건들 속에 드러난 이 놀라운 은혜, 사랑, 사귐이 있기에 실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고 한 식구가 되어 살아가는 거죠.
* 그리스도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하신 것은 바로 우리 죄를 값없이 용서하시기 위함이요, 그 죄값을 감당하시기 위함이었으니, 이게 바로 값없이 베풀어주신 은혜인 거고,
* 그 모든 일은 아담과 하와 때로부터 나에게 이르기까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난 죄를 간과하시고 용서하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사실.
* 특히나 모든 인간이 신을 떠올리면 변덕쟁이요 인간에게 해코지나 하는 두려운 존재로 생각하는데, 실은 우리를 지으신 참되고 유일하신 신이신 하나님이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주신다는 사실. 이것을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을 때 진짜 충격먹었던 경험들... 나아가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차리게 되고, 알면 알수록 정말 감동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 무엇보다도 마지막 성령의 사귐, 이건 정말 획기적이죠.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사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 마음을 주님께로 이끌어주시고, 성경을 깨닫도록 조명해주시고. 또 우리가 감히 하나님께 나아갈 용기조차 없을 때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주시는 분도 성령님이시고.
* 더 나아가 우리가 감히 하나님과 더불어 나와 이웃과 이 우주 만물이 하나님의 뜻으로 온전하게 되는 일에 동참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잖아요? 그 모든 과정을 ‘사귐’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건데요.
*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 성도들 사이에서의 사귐, 한 식구 됨, 바울의 표현을 빌리면 한 몸이 되고 각 지체로서 연합하는 것, 또는 같이 한 성전이 되어가는 것, 이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성령께서 이끌어 가시는 사귐을 배우고, 나아가 이웃과 세상 구석구석에 이 사귐을 나눌 수 있는 거잖아요?
* 이 모든 게 녹아있는 게 바울의 마지막 인사입니다. 생각해볼수록 정말 심오하고 원대한 모든 게 다 포괄된 축복기도요 인사입니다.

4. 거룩한 입맞춤으로 문안, 화평, 같은 마음, 기뻐하기.
* 바울이 마지막에 한 단어, 한 구절로 압축해서 건네는 권고들... 하나하나 다 묵상하면 시간이 엄청 날 것 같습니다. ㅠㅠ
* 특히 고린도 교회의 찢어지고 다투는 상황 속에서 한마음을 품을 것, 거룩한 입맞춤으로 인사하는 것 등등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려면 엄청난 용기와 내적 투쟁과 성숙을 향한 몸부림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 바울은 이 모든 걸 해내야만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이 함께 하실 거라고 말합니다.
* 우리도 고린도 성도들 못지않게 버라이어티한 관계의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은데, 바울의 권면과 기도처럼 성령께서 사귐으로 이끌어주시는 길을 잘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조금씩 그렇게 온전해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겠죠?


*** Ps. 이렇게 해서 고린도후서 묵상이 끝났습니다. 내일부터는 데살로니가전서를 묵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