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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18년2월06일(화) 눅5:27-32>“세리와 죄인들과 허물없이 밥 먹는 예수님, 그 인격적 만남이 절실한 시대”

<2018년2월06일(화) 눅5:27-32 큐티목소리나눔>
“세리와 죄인들과 허물없이 밥 먹는 예수님, 그 인격적 만남이 절실한 시대”

1. 세리 레위를 부르심
 * 그가 ‘세리’라는 직업을 갖고 살았다는 게 부르심의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 가는 세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이 부르시자 “일어나 그를 따라갔다.” : 그의 내면에 예수님을 따르고자하는 열망이 가득했었고, 부르심에 즉시 순종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것”(눅9:62)이 아님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따르겠다던 태도”(마8:21)가 아님을, 오히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능~~^^

 * 한편, 예수님이 주도적으로 그를 부르셨다는 게 레위에게는 엄청난 감격이었고, 힐링이었던 모양입니다. 곧바로 집으로 모시고 잔치를 벌렸거든요.^^
 * 사실, 당시에 세리로 산다는 건 정말 모욕감과 수치심을 달고 사는 거였단 말예요. 바리새인들은 그들을 대놓고 불가촉 선언하고, 사람들은 민족반역자로 몰아가고(로마에 세금을 거둬줬으니까요), 개인적 착복에 대해 썩어빠진놈이라고 욕하고... 암튼 이런 상황 속에서 내면적 외로움과 만남에 대한 갈망이 컸던 그에게 예수의 부르심을 완전 생수였던 거죠.
 * 누군가가 “제발 좀 도와주세요~~”라고 요청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의 필요와 아픔을 알아차리고 그냥 한마디 건네는 위로의 말, 같이 가서 밥 한그릇 같이 먹는 초대가 어떤 이들에게는 정말 힐링과 감격이 되는 순간임을 그게 바로 “나를 따르라”고 예수님이 초청하시는 그 초청장을 전하는 자로서의 내 사명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2.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예수님
 * 예수님은 세리 레위(마태복음에서는 이 사람을 마태라 부르죠^^)가 베푼 잔치자리에 세리들과 그 친구들(죄인들)과 더불어 즐거운 식사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바리새인은 왜 하필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앞 본문에서 본 것처럼 예루살렘으로부터 전국에서 파견된 감시자로서 예수님 주변을 늘 서성거리는 안기부 요원 역할을 하는 중임), 이 모습이 못마땅해서 불만을 터뜨립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이라는 규칙을 열심히 준수하고, 죄인이라는 사람들하고 담을 쌓고 만나지 않는 분리주의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의 행동은 완전 파계승처럼 보였겠죠?
* 예수님 왈, “건강한 사람에게의 의사가 필요 없다.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난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 죄인을 불러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 수 있게 하려면, 그들과 함께 어울려야 되지 않을까? 너희처럼 분리장벽 높게 쌓아두면 어떻게 만날 수 있겠니? 만남이 없는데 어떻게 초청할 수 있을까?...
  (cf. 비유를 잘못 해석하면, “바리새인=건강한 사람=의인, 따라서 예수님은 이들을 부르러 오신 게 아냐!”라는 엉뚱한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비유는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파악하는 도구이기에 원관념에 사용된 보조관념을 찾고, 나머지 보조 장치들-본문에서는 건강한 사람, 의인- 은 과감하게 생략해야 합니다.)

3.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 되신 예수님, 그 인격적 만남이 절실한 시대
 ****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속에서 이웃들과 어울려 살면서 실제로는 “그들과 우리”라는 높은 장벽을 쌓고 살고 있는 모습을 곳곳에서 보게 됩니다. 그러고서 전도하기 위해 살짝 다가가서는 얼른 전도지 한 장 전해주죠. 친절한 척 커피 한 잔, 물티슈 하나와 함께...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아파트 분양 홍보, 인터넷 가입 홍보랑 별 다를 바 없는 상품 판매...ㅠㅠ
  진짜 그냥 사람답게 서로 브로맨스 나누는 친구로 살면서 같이 어울리고 같이 삶을 나누다보면 어느새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빛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그런 삶이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분리장벽부터 허물고 뛰어들어야 하는데..... 전도가 아니라 친구부터 되어야 하는데....

 *** 한편, 요즘 교회에 만연해있는 동성애반대, 이슬람 반대 투쟁을 보면서, “예수님이 죄인을 회개시키는 방법 = 같이 밥 먹는 것”이 완전 대비되는 게... 참 충격입니다요...ㅠㅠ
 * 예수님은 죄를 지은 한 무리를 완전 격리해야하는 ‘대상’으로 본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 그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대해주신 저죠. 또한 회개는 게 각자의 삶의 스토리 속에 녹아있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본성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돌이켜 주께로 나아오는 긴 과정이라는 것을 잘 아시기 때문에, 갑자기 달려들어 외과적 수술을 하신다든지 뭐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이 밥 먹고 삶을 공유하는 시간을 꾸준히 갖고, 그 사람의 필요에 도움을 아낌없이 베풀고, 나를 열고 친구가 되어가는 시간을 쭉~~ 갖고 있는 거죠. 그 가운데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계심을 알아차리고, 지신이 죄인이었음을 고백하고 돌이키는 걸 원하신다는~~예수님은 그걸 3년이나 꾸준이 하셨구요..
 * 그런 면에서, 지금 동성애 반대, 반대,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교회와 거기 참여하는 사람들이 참 안타깝습니다. 그 한사람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깊이 사귀는 것 대신에 이 땅에서 몰아내야고, 벼랑 끝에서 밀쳐내는 밀어버리는 일을 하고 있는 거죠(완전 바리새인들의 태도라는..ㅠㅠ).
 * 적어도 내 아들이, 내 딸이 동성애자라면? 이라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본다면,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렇게 모질게, 악담을 퍼붓고 저주를 날리며 대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반대 데모하는 대신에 집을 열어서 그 한사람을 초청하고 이웃이 되는 시간, 레위집 잔치에서 그들 한사람 한 사람과 흥겹게 어울리시는 예수님처럼 사귐을 갖는 게 더욱 중요한 일이 아닐까욤?
 * 거리낌없이 다가가서 친구로 사신 예수님을 본받아 오늘도 즐겁게 잔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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