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산IVF영성식탁/[시심묵상]하창완목사의 '맑은물소리'

<2018년3월14일(수) 눅9:51-56>“적대적인 사람을 만났을 때는?”

<2018년3월14일(수) 눅9:51-56 큐티목소리나눔>
“적대적인 사람을 만났을 때는?”

1.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에서 일어난 일
*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게 가장 지름길입니다. 도단쯤에서 산으로 올라가서 산등성이를 타고 쭉 가면 되니까, 유대광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가깝습니다.
 * 근데, 사마리아사람들은 유대인들과 서로 사이가 안 좋습니다. 바벨론 포로기 때 팔레스틴에 남은 유대인들이 그 지역 원주민들과 통혼하면서 생긴 혼혈족이 사마리아인이기 때문에,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이들을 배척하면서 생긴 앙금이 역사적으로 쌓여 있기 때문입니다.
 * 주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을 무시하면서 갈등이 생기는데, 갈릴리 지역의 유대인들은 남쪽 유대지역으로 가면서도 이 사마리아 땅을 피해서 유대광야 쪽으로 주로 우회해서 다녔습니다.
 * 근데, 예수님은 지금 이 사마리아 지역을 바로 통과하시는 겁니다. 게다가 그 지역에서 하룻밤 자기까지 하려는 거죠. 완전 대박사건!
 * 하지만 예수님보다 앞서 가서 숙박지를 구하던 제자들이 아무 곳에서도 잘 곳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예수님의 수행 제자들, 완전 빡치는 거죠. 안 그래도 이 동네를 지나가는 것만 해도 기분 나쁜 일인데, 거기다가 이놈들이 우리를 완전 무시해?
 * 요한과 야고보는 성질이 났습니다. 예전에 엘리야가 하나님을 대적하던 아하시아 왕의 부하들을 불로 태워 죽였던 사건(왕하1:10~)을 떠올랐습니다. “이놈들을 그냥, 싹 쓸어버려야겠다. 지금 이분이 누군 줄 알고? 감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 아들 예수님을 개 무시해?”
 “주님, 불로 싹 쓸어버릴까요?”
 * 예수님은 요한과 야고보를 크게 꾸짖으셨습니다.
  “어이구... 지금까지 너 나에게서 뭘 배웠니?  내가 온 것은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게 아니잖아? 한 명이라도 더 구원해야쥐!!! 정말...”(성경 난외주에 나와 있는 소수 고대 사본 참고)
 * 그러고는 그냥 다른 마을로 가시는 겁니다. 띵~~~

2. 적대적인 사람을 만났을 때는?
 * 앞서 어떤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서도 예수님 수하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을 제자들이 말렸을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해봅니다.
 “막지 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는 지지하는 사람이다.”
 * 우리는 이 말씀을 통에서 기독교 안의 다양한 전통과 교파, 교리적 차이 등등이 우리가 한 형제임에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 그러면, 명백하게 우리를 반대하거나 적대시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할까요? 적극적으로 그들을 대적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저주를 퍼부을까요?
 * 예수님은 제자들의 그런 경향을 크게 야단 치셨습니다. 그러고는 조용히 다른 마을로 가시는 거죠...

 *** 요즘, 기독교의 이름으로 각종 혐오집회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맘에 들지 않는 대상들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 집회들이죠. 매주 강단에서 듣는 얘기도 이와 비슷하구요...  이건 아니잖아요?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에 완전 정면도전하는 거고, 반대자들에게 불을 내려 보내자는 요한의 흥분상태랑 닮았습니다.
 * 예수님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생명을 구하러 온 자가 멸망시켜서야 원...”
 * 그러면, 왜 요한과 야고보는 흥분했고, 우리는 이런 집회를 하는 걸까요? 바로 우리 속에 가득한 우월감 때문이죠.
 * 우리 안에 가득한 이 우월의식, ‘너희는 다 죄인, 우린 의인’이라는 교만함, 사실 이게 성경이 말하는 죄의 핵심 아닌가요? 기독교의 이름으로 죄를 먹고 마시는 거죠. 예수님이 흘리신 십자가의 피가 자기 우월감을 더 강화시키는 걸로 오용되는 거구요...
 * 흔히 그럽니다. 그렇게 하나 둘 허용하다 보면, 기독교의 순수성이 무너지고 교리가 왜곡되고, 신앙이 변질된다고... 허용이 아니죠. 사랑으로 품어주고 인내하고 용납하고.. 그러는 거죠. 내안에 계신 예수님이 얼마나 작으면 적대자들을 잘 대해줬다고, 같이 밥 먹었다고, 같이 예배드렸다고 내 신앙이 변질되고 무너집니까?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릴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그렇게 구원받았으면, 그 예수님은 그에게도 동일하게 구원의 손을 내미시는 분이신데, 내가 뭐라고, 그 길을 가로막고 저주를 선포하냐고요...
 * 암튼, 오늘 말씀은 요즘 기독교의 전반적인 흐름에 완전 제동을 걸고, 정면으로 야단치시는 예수님의 호통으로 다가옵니다요...ㅠㅠ
 * 또한 조용히, 내 속에 자리하고 있는 각종 우월감, 도대체 그게 예수님 앞에서 얼마나 초라하고, 심각한 죄인지를 더 깊이 묵상하게 되는 시간이네요.... 주님....
 * 이렇게 흥분하고 우월감에 가득했던 요한도, 야고보도 나중에 성령이 충만해서는 사랑의 사도로 불릴 만큼 깊은 사랑으로 성숙해갔음을 기억하면서, 오늘 내 삶에서 정말 부족한 사랑과 용납도 주님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조금씩 자라나갈 것을 기대하면서, 오늘도 말씀을 깊이 간직해봅니다.
http://podbbang.com/ch/8784?e=22555571